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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

근세 건축 - 3

by 려령 2023. 10. 4.

3. 근대의 여명기

 

18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정치, 경제 및 사회 등 모든 분야의 변화들은 유럽사회에 커다란 변혁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종교적으로 그리스트교에 대한 절대적 신앙이 쇠퇴하고, 학문적으로는 자연세계에 대한 과학적 연구태도와 지식이 크게 확대되었습니다. 즉, 18세기에 전성기를 맞은 계몽사상의 영향으로 모든 면에서 합리성을 추구하는 사회적 풍토가 또한 조성된 것입니다. 정치적으로도 기존의 왕권과 사회제도에 대한 의문의 팽배해지고 결국 1789년의 프랑스 혁명과 1775년의 미국 독립혁명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1760년의 산업혁명으로, 기계화와 이에 따른 새로운 건축재료의 대량생산이 종전과는 다른 건축에 대한 풍부한 가능성을 부여하였습니다. 새로운 건축생산의 방법을 틀징지은 가장 큰 요소는 주요재료가 돌, 벽돌, 목재 등 수공업적 재료에서 공업적으로 생산되는 철, 유리, 시멘트로 바뀐 점이었습니다.

하지만 19세기에 이르러 고조된 산업발전에 의한 경제 및 사회생활의 변화는 그 당시의 건축문화와 양식이라는 측면에 즉각적으로 반영되지 못하였으며, 건축의 본격적인 발전은 19세기에 이르러 고조된 산업발전에 의한 경제 및 사회생활의 변화는 그 당시의 건축문화와 양식이라는 측면에 즉각적으로 반영되지 못하였으며, 건축의 본격적인 발전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시작됩니다. 따라서 19세기의 건축은 진보의 항로에서 뒤떨어져 있게 되고 미래를 향하는 대신 과거를 바라보는데 몰두하였습니다. 특히 학자들 간에 과거의 건축양식에 대한 역사적 고증과 고고학 분야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었는데 그 결과, 19세기의 건축은 고전주의 건축, 낭만주의 건축, 절충주의 건축 등, 과거양식의 모방시대로 특징지어졌습니다.

 

 

가. 신고전주의 • Neo-Classicism 건축

낭만적 고전주의 혹은, 신고전주의라고도 불리어집니다. 18세기 중엽에 이르러 바로크와 로코코 등의 자유로운 건축기법이 지나치게 복잡, 화려하게 진행되어 그 진로가 한계에 이르자, 이에 대한 반동으로 엄격하고 건전한 고전의 모습으로 건축을 되돌리려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여기에는 고전유적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가 활발하여 이에 따른 다양한 문헌이 발간되어진 영향도 크게 작용하였습니다.

르네상스건축도 고전으로의 복귀를 지향한 것이었지만, 당시의 고전건축에 관한 지식은 매우 불명확하여 오히려 천재적인 건축가의 창의력에 의지하는 바가 컸습니다. 이에 비해 18세기의 고전주의에서는 창조적 태도는 상실되고 그리스, 로마건축을 복사하려고만 하엿습니다. 이러한 고전주의가 번성한 시기는 나라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대개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중반에 이릅니다.

완벽성과 이상적인 미, 그리고 절대적인 법칙 등을 추구하는 고전주의의 경향에 따라 건축가들은 건물을 내부 기능과는 무관하게 형식적인 외관으로 건물을 구성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1) 정육면체, 구, 피라미드, 원뿔 등의 단순한 입체를 출발점으로 사용하거나, 2) 그리스나 로마의 기둥, 엔터플레쳐같은 반복적 오더를 사용함으로써 보편적 의미의 외피를 구성하였습니다. 그 결과, 건축의 형태는 기능과 기술로부터 분리되어 형식주의적인 건축으로 귀결되었습니다.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1824 ~ 1847)과 영국은행(1818 ~ 1823), 프랑스 파리의 판테온(1756 ~ 1790)과 에트와르 개선문(1806 ~ 1836), 그리고 독일 베를린의 왕립극장(1818 ~ 1821)과 알테스 박물관(1823 ~ 1830) 등이 있습니다.

 

나. 낭만주의 • Romanticism 건축

18세기 후반에는 계몽사상과 신고전주의에 대립하는 반대운동인 낭만주의사조가 1760년 경 영국에서 시작되어 이후 독일, 프랑스 등에서 19세기 중반까지 지속되었습니다. 낭만주의는 계몽주의의 극단적인 합리주의적 사고방식과 이성에 대한 과도한 치중에 반대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연주의적인 것을 찾고, 신고전주의가 그리스나 로마 건축틔 부흥운동을 펼친 것과는 달리, 중세기의 고딕 건축의 부흥을 택하였습니다. 런던의 국회의사당 건물은 그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건축적 형태는 직선적이 아니고 비대칭적인 계획과 매스의 처리방식을 즐겨 사용하였고, 회회적이며 픽처레스크한 경향이 강하였습니다. 

영국 런던의 국회의사당(1836 ~ 1852)과 브라이튼 궁전(1815 ~ 1821), 독일의 베를린 대성당(1819), 그리고 파리의 성 클로틸드 교회당 등의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특히 프랑스의 건축가이자 건축이론가인 뷔올레 르뒥은 고딕 건축을 구조와 형태가 통합된 우수한 건축으로 보고, 방대한 연구와 함께 이론서를 발표하였습니다.

 

다. 절충주의 • Eclecticism 건축

한정된 과거양식의 재현이 무의미함을 깨닫고 새로운 시각에서 과거의 양식 전체를 되돌아보고, 이들 각종의 양식에서 취사선택하고 절충하여 새로운 건축을 만들려고 시도하였던 건축사조입니다. 따라서 이 시기는 과거양식에 대한 방황의 시기로서 과거의 양식이 청산되는 최종적 단계이자, 새로운 시대와 건축을 위한 준비의 기간이기도 하였습니다. 이 절충주의 건축은 19세기말에까지 이르게 되며, 영국의 경우는 1920년대까지 지속되었습니다.

 

 

19세기는 이와 같이 고전주의, 낭만주의, 절충주의 등으로 양식의 혼란기였으나, 그 저변에는 과학사상의 발달과 산업혁명에 의한 경제조직의 변혁에 따른 합리성의 요구와 새로운 건축재료의 단계적 적용에 대한 요구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변화된 사회 / 경제적, 그리고 생활상의 요구를 옛 시대의 형식으로만 해결하려고 한 것이 또한 이 시기의 특징이었습니다.

이 후 근 100여 년 동안 양식이라는 굴레에서 맴돌던 유럽의 건축은 여러가지 사회적 여건 즉, 철, 시멘트, 유리 등과 같은 신 재료의 등장, 새로운 건축적 표현을 가능케 한 박람회 등 많은 기회의 부여, 그리고 건축과 연관된 다른 예술분야의 발전에 도움을 받아 근대건축의 여명기를 맞이하게 되며 이에 대한 내용은 다음 장에서 서술하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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