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바로크 건축
가. 매너리즘 건축
16세기말, 그네상스의 고전주의적 전성기가 끝나고, 또 하나의 사조로서 바로크가 등장하기 전까지인 1520년부터 1600년, 또는 1620년 까지의 반 고전주의적 경향의 예술 사조를 매너리즘이라고 합니다.
미켈란젤로의 건축에는 고전건축의 세부를 사용하면서도 그 법칙에는 지배되지 않는 가운데 자신의 개성을 자유롭게 표현하려는 경향이 강하였습니다. 이처럼 고전양식에 무엇인가 새로운 창의성을 가하려는 경향은 1520 ~ 1530년경부터 점차 일어나서 16세기말까지 계속되는데 이를 매너리즘이라 부릅니다. 어떤 양식이 극도로 발달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한 매너리즘은 원래 [틀에 박힌] 이라는 의미를 지니며, 그 밖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나, 20세기 초에 와서 그 의미가 변하여 예술에서 하나의 특수한 역사적 양식, 구체적으로는 이탈리아에서 16세기의 탈 르네상스 양식에 대한 용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결과적으로 볼 때, 르네상스로부터 바로크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나타났던 유동적인 과도기였으므로 어떤 고정된 형은 없었습니다. 따라서 매너리즘 건축에 대한 해석에 대해서도 하나의 정설은 없다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상태입니다.
나. 바로크 건축
건축가의 주관을 매너리즘보다도 더욱 격정적이고 동적으로 건축의 표면에 나타내려고 한 것이 바로크 양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로크] 란 말의 의미는 [이상한] 즉, 이상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비정형적이고 기괴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고전주의 건축가들에게는 이상하고 사치스러운 (또는 지나치게 화려한) 형태에 빠져있는 듯이 보이는 건축양식 즉, 17세기 이탈리아 양식을 나타내는데 사용되어 왔으나,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이 단어는 경멸적인 뜻이 없어지고 1600 ~ 1750년 사이의 서양예술 사조를 지칭하는 명칭으로 공식화되었습니다.
바로크양식에서는 곡선이나 나선형을 즐겨 사용하였으며 건축물의 내 / 외부를 조각적으로 다루어 요철에 의한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강렬하게 하였습니다. 나중에는 평면형에까지 곡선이나 타원형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일찍이 미켈란젤로가 보여주었는데, 그는 매너리즘을 뛰어넘어 바로크로 옮겨간 선구자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바로크양식은 조형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허구성이란 측면에서 비난받기도 하지만, 건축에 독특하고 풍부한 내용을 가져다주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동적인 느낌과 역동적인 경험을 부여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될 수 있습니다. 즉, 건물을 하나의 고정된 시점에서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경과와 함께 이동하면서 다양한 형상과 색채, 명암, 그리고 공간감을 체험토록 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크의 움직임에 대한 생각은 분수의 계획에서처럼 물의 사용에서 잘 나타납니다.
베르니니(1598 ~ 1680)는 건축과 조각, 그리고 흐르는 물을 결합한 예술의 대가엿으며, 성 베드로 성당의 광장설계를 통하여 타원형의 거대한 열주회랑과 사다리꼴의 진입회랑이 주는 상징적 의미와 인간의 이동에 따른 투시도적 공간효화를 잘 표현하였습니다. 보로미니 (1599 ~ 1667)는 바로크의 특성을 더욱 발전시켰는데, 성 카를로 성당의 설계를 통하여 중앙집중형 평면의 교회를 적극적으로 변형시킨 타원형의 평면과 외관 모두에 걸쳐 오목면과 볼록면이 교차하는 파동치는 벽면을 계획함으로서 조소적이고 역동적인 느낌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프랑스의 중세건축을 기본으로하여 세부적으로 르네상스양식을 가미한 독특한 건축을 궁전건축 등을 중심으로 건립해오던 프랑스에서는 베르사이유 궁전과 정원건축을 통하여 바로크 건축의 양식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편 루이 15세의 시기에 이르러 프랑스에서는 이탈리아이 후기 바로크 양식이 아니라, 섬세하고 경쾌하며 화려한 경향의 건축양식이 실내장식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를 로코코 양식이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