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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

고대 건축 - 1

by 려령 2023. 10. 1.

1. 원시건축과 고대 건축문화의 권역

 

건축의 기원은 대략 B.C. 8000년에서 B.C. 3000년까지 지속된 신석기시대로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 이전의 시기에서는 대개 자연 상태의 동굴 등을 거주 장소로 이용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농경사회가 시작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문명사회가 시작되고, 소위 세계 4대 고대문명이라고 일컬어지는 ① 나일강을 중심으로 한 이집트문명, ② 티그리스, 유프라테스강을 중심으로 한 메소포타미아문명, ③ 인더스, 갠지즈강을 중심으로 한 인더스문명, ④ 황하유역을 중심으로 한 황하문명 등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건축문화 역시, 문명의 발생지역에 따라서 각각 그 특성이 다르게 나타났는데, 대개 다음의 5가지 계통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① 서부 아시아 지역 : 페르시아, 이라크,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유역에서 시작하여 인더스강 유역, 인도의 펀잡지역에 이르는 지역

② 지중해 연안지역 : 이집트, 북 아프리카, 지중해 연안 도서지역, 이탈리아, 그리스, 등에 이르는 지역

③ 동부 및 북부 유럽지역 : 다뉴브강 유역에서 발생하여 동으로 흑해, 서북방으로 스칸디나비아에 이르는 지역

④ 동부 아시아 지역 : 중국의 황하유역 일대의 지역

⑤ 중부 아메리카 지역 : 북아메리카의 남부와 남아메리카의 북부지역

 

 

2. 메소포타미아 건축

 

관개농업이 맨 처음 일어난 곳은 티크리스와 유프라테스의 두 강 사이의 땅인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지방이었습니다. 현재 이란,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이스라엘, 요르단, 쿠웨이트 등의 국가가 위치한 서부 아시아지역은 강수량이 적고 한서의 차이가 심하여 인간의 거주에 좋은 조건을 지니고 있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두 강의 하류지역의 비옥한 충적지 일대에서는 기원전 3,500년경부터 여러 곳에서 큰 마을이 형성되었고 이는 다시 도시국가의 형태로 발전하면서 고대문명이 전개되었습니다.

이집트의 경우, 초기 (고)왕국시대부터 수천년간 을 단일종족에 의한 통일된 국가체제로 유지되었던 것에 비해, 이 지역은 국가 민족적, 지정학적 이유 등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지속성광 응집력이 약하여 명확한 한 줄기의 계통을 잇지 못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지역의 건축은 ① 구  바빌로니아 건축시대 (B.C. 3,500 ~ B.C. 2,000), ② 힛타이트 건축시대 ( B.C. 2,000 ~ B.C. 1,200), ③ 앗시리아 건축시대 ( B.C.  900 ~ B.C. 612), ④ 신바빌로니아 건축시대 ( B.C.  625 ~ B.C. 539), ⑤ 페스시아 건축시대 ( B.C. 539 ~ B.C. 331) 등과 같이 정복자의 문화에 따라 다양한 명칭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이 지역은 목재와 석재가 귀하여 진흙벽돌과 구운 벽돌을 건축의 주재료로 사용하였습니다. 또한 벽체는 두껍고 창은 작게 내어 중정식 평면구성과 함께 덥고 건조한 기후에 대응하는 건축을 정착시켰습니다. 이 지역에서 발전시킨 구운 벽돌과 타일, 얇은 돌 등으로 마감한 벽 표면과 아치(Arch) 및 보울트(Vault) 구조방식은 후에 로마, ㅣ잔틴, 이슬람 건축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리고 이집트인들이 사후의 세계에 관심을 집중시켰던 것에 비해 이들은 현세의 삶과 운명을 중시했습니다. 그 결과, 마법적인 목적에서 시작된 점성술이 일찍이 발달하였으며, 현세의 불안을 달래줄 수 있는 신을 위한 신전건축에 몰두하였습니다.

이들의 신전건축에는 보통의 신전과 지구라트(Ziggurat)라는 특수한 고층 탑상건축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지구라트는 여러 층의 단이 진 벽돌로 된 구조체로서, 정상에는 광장을 만들고 신을 모시는 가장 중요한 공간을 두게 됩니다. 메소포타미아인들의 대부분의 평지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인간들은 신의 거주지로서 인공적인 산을 만들어 존경심을 표현하였스니다. B.C. 2,100년경에 건립된 우르(Ur)의 지구라트는 62.5m × 43m 의 장방형 평면에 3개의 단으로 구성되었으며, 외벽마감은 구운 벽돌로 약 65° 경사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기원전 5세기경, 페르시아인들의 정복 시 바벨탑과 함께 파괴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현존하는 초, 중기의 메소포타미아 건축 유적이 이집트 건축에 비해 적은 것은 벽돌이라는 재료가 지니는 내구성의 한걔가 큰 이유 중 하나입니다.

 

 

3. 이집트 건축

 

그리스의 역사가인 헤로도스투스(Herodotus)가 "이집트는 나일강의 선물"이라고 표현한였듯이 나일강 하류의 범람에 의한 토양의 퇴적과 수로현상은 이집트 문명의 주요한 발생조건이었습니다. 또한 동쪽과 서쪽으로는 아라비아사막과 리비아사막이, 그리고 북쪽으로는 지중해가 위치하여 지리적으로 고립된 입지조건에 의해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습니다. 초기에는 작은 도시국가들로 대립되어 있었으나, B.C. 3,200년경에 통일국가를 이룬 후 고왕국, 중왕국, 신왕국시대로 일컬어지는 26대 왕조까지 단일문화가 이어지게 됩니다. 특히 파라오(Pharaoh)라는 국왕은 태양신 라(Ra)의 후손으로 신과 같이 존중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확립된 신권군주제를 통해 강력한 전제정치를 폈던 파라오는 피라미드와 같은 거대한 구조물의 건립을 추진할 수 있었습니다.

사상 및 종교적 배경을 살펴보면, 동물숭배(Totemism)사상에 젖어있던 이집트인들은 세상만물에 사람과 같은 영혼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또한 사람이 죽은 뒤 선의 혼(Ka)이 갈 곳은 사체이며, 이 사체는 15,000년 만에 부활한다는 독특한 내세관에 따라 현세의 집을 임시적인 것으로 여기고 사후의 분묘를 영원한 주거로 여겼습니다. 따라서 미라 제조법이 발달하였고 이집트의 건축문화도 이러한 종교에 큰 영향을 받아 사후의 건축인 분묘건축과 신전건축의 건립을 촉진시켰습니다.

초기 이집트왕국의 건축재료 또한 나일강 유역의 조건에 의해 결정되었습니다. 당시에 용이하게 얻을 수 있는 갈대인 파피루스(Papyrus)와  진흙은 오랫동안 주거건축에 가장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흙벽돌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벽체의 중량이 매우 크므로 이의 지탱을 위해 경사지게 만든 벽체의 형태는 후에 이집트건축의 일반적 형태가 되었습니다. 이집트건축에 석재가 사용된 것은 비교적 후기의 현상이며, 이집트의 석조건축은 초기의 갈대, 진흙, 목재 등으로 건축하던 때의 형태 또는 티테일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집트의 분묘형식으로는 마스타바, 암굴 묘, 피라미드 등이 있습니다.

 

1) 마스타바 (Mastaba - 아라비아어로 평탄한 탁상이라는 의미)

토템사상 및 신인동격설에 의한 사체존중사상에 따른 분묘로 초기에는 천일 건조된 점토벽돌로, 후기에는 석재로 건립되었습니다. 외벽은 약 70도 정도로 경사져있으며, 단일형 마스타바에서 군집형 마스타바로, 다시 단형(stepped)피라미드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2) 피라미드 (Pyramid - 위대한 태양신인 Piramoid라는 의미)

이집트인 특유의 내세관 및 영혼관이 반영된 분묘입니다. 피라미드의 삼각형은 성자체로 피라미드의 형태결정에 유추적 역할을 하였습니다. 피라미드는 Mastaba - Step Pyramid - Bent Pyramid - Common Pyramid 의 단계를 거치면서 발전해 왔는데, 강렬한 햇볕아래 붉은 사막의 단조로운 자연성에 잘어울리는 피라미드의 형태는 자연과 인공물의 극적인 대비를 훌륭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고왕국 시기에 건립된 기자에 있는 피라미드 군집은 쿠프왕( B.C. 2590 ~ 2567), 카프레왕( B.C. 2567 ~ B.C. 2461), 멘쿠레왕( B.C. 2461 ~ B.C. 2442)등이 차례로 건설한 것으로 그 절정을 이루며, 왕권이 가장 강성했던 시기와 일치합니다.

이 중 규모가 가장 큰 쿠프 왕의 피라미드는 밑변의 길이와 높이가 230m × 230m × 146.6m의 규모이며, 농한기인 8,9,10월에는 농노 10만 명씩을 동원하여 30년간의 대 역사를 통해 완성하였습니다.

 

천연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암반 위에 내부는 기제의 동쪽 기슭 내륙에 분포된 담홍색의 석회석으로 구축하고, 외피는 나일강 상류 동쪽 기슭에서 채석된 백색 화강암으로 마무리하였습니다. 또한 이 피라미드의 용도에 대해서 천체관측소설 등의 해석이 있을 정도로 각 면의 방위와 좌표 등이 특정 일자의 천체현상과 일치하고 있음을 볼 때, 이 시대의 천문, 측량, 기하학 등의 뛰어난 수준을 알 수 있다.

마스타바와 피라미드는 사실 사회성, 경제성, 기능성의 측면에서 부적합한 문제를 지니고 있었기에 고왕국 이후에는 소규모의 암굴분묘로 바뀌어갔습니다. B.C. 1991년 테베의 델 엘 바하리에 건립된 멘투 헤텝 2세의 분묘신전은, 사체보관소와 공간분묘의 개녕에 따랐습니다.

이는 피라미드적인 전통성과 암굴분묘적인 공간성이 결합된 새로운 복합양식으로 내 / 외부공간의 획기적인 시도로 평가됩니다. B.C. 1,500년경에 건립된 핫셉수트여왕의 분묘신전은 그 중 대표적인 걸작입니다. 또한 B.C. 1,301년경 아부심벨에 세워진 라메세스 2세의 암굴신전은 기념적인 왕권을 과시하고자 담홍색의 사암절벽을 깎아내어 초인적인 크기의 석상들을 외부와 내부공간에 새겨 넣었습니다.

한편으로 이러한 분묘신전과는 달리, 태양신 라와 암몬, 그리고 그외의 여러 신들을 기리기 위한 예배신전들이 있는데, 카르나크나 룩소르에 세워진 대 신전들은 여러 왕들이 대를 이어 증축하여 거대한 규모로 확장되어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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